어제 한파 때문에 2호선 중단되었었다.
그바람에 시터 이모님이 제때 못 오셨다. 이미 지각은 하게 된 거고. 그래서 오전 반차를 써버리다.
미뤄뒀던 아이 예방접종도 하고 회사에 가려니 반차를 써놓고 반차 시간 보다 일찍 회사 가는게 뭔가 아까운거라.
그래서 평상시 보고 싶었지만 아이 때문에 못가던 전시회에 갔다.
예술의 전당 훈데르트바서 전시회.

오디오가이드 3천원 내고 대여해서 꽂고 들으면서 감상중인데.. (음성해설 ; 지진희)
아무리 오디오가이드를 듣는다해도 도슨트 설명 처럼 좋지는 않는가.
그런데 마침 도슨트가 소수의 그룹을 이끌고 설명을 해주고 있더라.
옳타쿠나 싶어서 그 뒤 살짝 껴서 오디오가이드를 잠시 일시 중지하고,
귀를 도슨트 설명에 기울이면서 무임승차하면서 전시를 봤다.

그런데 그 그룹이 바로..  지.진.희 가 있는 그룹.
오디오가이드에서 지진희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눈 앞에 지진희가 있다니.
내가 무슨 마임화장품 연수원 잔디밭을 걷고 있는데 옆에 길라임이 걸어가고 있다는걸 본 김주원도 아니고;
아니 옆에 지진희가 있는 것. 그것도 바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리로.

그 그룹은 지진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침없이하이킥에 나오는 광수도 있고. 
나는 이름모를, 그러나 상당히 아름다우신 여배우 내지 모델로 추정되는 여자분도 두분 계시고.
월드비전에서 나온 VJ도 있고.
또한 누가 지진희 와 일당들의 미술품 감상을 방해할까 감시하는 경호원도 있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는 속도라는게 대부분 비슷하고
처음 시작하면 끝날때까지 대개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동안 있게 되니.
훈데르트바서 전시는 인기전시라 많은 사람들이 있는 전시였지만,
그 지진희 일당과 우연히 같은 전시실에 같은 보폭으로 전시를 보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상황.
어느새;; 나는 그 그룹에 끼어서 도슨트 설명을 함께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러다 전시가 끝나고 우르르 아트샵에 가게 되었다.
엽서 액자들을 보고 음 이거 얼마, 저거 얼마 이러고 있는데.
지진희가 "앗 커피잔 정말 예쁘다!"하고 가리킨다.
정말 예뻤다. 정말 너무 예뻤다.

얼마에요?라고 물어보니 무려 한잔이 우리집 커피잔 9개 가격.
세트로 구매해서 두잔이면 코치 가방 가격이더라.

그런데 샀다.
예쁘긴 예뻤다.


하지만 어쩌면..
예쁜 언니들 틈에서 화장 안하고 머리 부시시하고
옷도 이상하게 입고 그 와중에 코트 마저 단추 이상하게 잠구고 다녔던 아줌마가
언니들 앞에서 추레함과 열등감을 느끼고서는
대신 괜한 돈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중 한 손에 꼽는 충동구매였다.

하여간 지진희와 광수와 그 일당은,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엽서와 수첩을 사갔는데,
이 못생긴 아줌마는 그 몇배의 가격을 치르며 커피잔을 사고선 자존심을 챙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돈질을 하고선 자존심을 챙겼다고 생각한 제가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덧 :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짓을 하고 나서도.
또한번 자존심을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자존심 - "나는 충동구매라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정당한 가격을 내고 샀다. 정말 좋은 제품이었다. 지나면 후회할것이다.
라며서 저를 계속 세뇌시키고 있다.

앞으로 손님 올때마다 그 커피잔을 꺼내야지.
나중에 아이가 그 컵에는 손대지 못하도록 아주 높은데 숨겨 놓고.
식기세척기가 컵에 흠집 낼까 안달하며 일일히 손 설겆이 하면서.
40이 낼모레인데 대체 언제 철이 들까.

 


캡 비싼 커피잔 사용 소감은.. 매우 가볍더라 정말 매우 가볍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