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시터님이 몇주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음식을 집어가시는 것 같더니,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냉장고 전체를 털어가셨어요.
(원래는 여기 야채칸 박스에 주말 내내 7끼동안 먹을 메인디쉬의 식재료가 가득 담겨있었답니다.)
밑반찬도 홀랑 가져가서 남은 밑반찬은 멸치 아주 조금과 김치 아주 조금.
오늘 저녁에 다 먹어버려서 내일 점심부터는 먹을게 전혀 없어요.
라면을 먹어도 김치가 없어서...

저는 참 순진한 사용자라서.
내가 근로자니까, 나 역시 내가 고용주로서 근로자에게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시터님이 절대로 아이 보는 일 외에는 하지 않으시도록 가사도우미도 따로 썼고요.
일부러 오버타임땐 시간당 1만원으로 제가 올려드렸고, 오버타임도 웬만하면 하시지 않도록.
6개월간 딱 3번, 토탈 3시간 오버타임 하셨어요.
저녁때마다 남편이 요리를 하는데, 꼭 3인분을 해서 늘 낮에 드시도록 배려해놨었어요.

애초에 계약할시
[아이가 곧 직장어린이집에 가게 될 예정인데,
어린이집이 현재 건립중이니 건립때까지만 봐다오] 하고 계약을 했었고.
이게 제가 제일 실수한 부분인데. 5월 1일에 어린이집을 개원하는 것을 미리 통보해드렸습니다.
제가 회사원인데, 내일부터 안나오세요. 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당장 100만원이 없으셔서 일하시는 분인데 갑자기 130만원 없어지면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100만원은 다른집에서 원래 받으시던 돈, 130만원은 제가 드리던 돈)
미리미리 미래계획 세우시라고 미리 말씀드린거였죠.

그 이후로 이모님이 더욱 더 막나가시기 시작했어요.
그저께는 시훈이가 똥독이 올라서 제가 포도상구균을 의심할 정도로 심하게 발진이 폈답니다.
(하필 저도 그 분유 이용자. 제조일이 달라서 리콜 대상은 아니지만.)
알고보니 진실은 애가 응아를 쌌는데 기저귀를 오랫동안 갈아주지 않으셔서 였답니다.

저는 인간의 도리로, 역지사지 심정으로 한 거였는데 이렇게 배반을 당하다니 참.
심지어 남편분은 경찰지구대 경정이세요;;


저는 가사도우미 분도 비싼 도우미분을 썼었어요.
일반적으로 반나절 도우미는 3만5천원이잖아요. 그런데 전 5만원짜리를 썼어요.
5만원짜리를 쓰면 가사도우미분 대상으로 4대보험을 들어드리는 제도가 있거든요.
회사원이라서 그런지 전 4대보험은 필수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돈이 비록 한달에 6만원이 더 나가고, 이건 거의 2주치 금액에 육박하는 금액인데도
그렇게 했던 것은 그 님의 복지 차원이지 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근데 그분이 거기에 돈내지 말고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4만원 달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쓰기엔 조금 어려운 얘기일수도 있겠는데.
전 우리나라 사회가 공복지 시스템이 다른 경제선진국 대비해서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세금을 적게 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전 세금을 많이 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자입니다.
그런데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결국 더 가진 자들이 자기 몫을 좀 포기하고 좀 덜 가진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잖아요.

저는 세금을 많이 내고 싶지만, 나라에서 워낙 많이 환급을 해주기 때문에 (올해 연말정산 200만원 환급. 예전엔 세금 일종의 기부라고 생각하고 굳이 연말정산에 이것저것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 전산화가 되는 바람에 알아서 돌려주더라고요.) 대신 제가 쓰는 고용인 분들에게는 그런 복지시스템을 잘 해주고 싶었는데요.

뭔가 다 헛짓 같은거에요.
제가 정말 바보 중에 초 바보 짓을 하는걸까요?


도우미 두분 얘기는 어찌보면 하급 노동자에 국한 된 얘기일 수 있어요.
워낙 먹고 살기 힘든 분들이니까 너무 삶에 찌들어서. 라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요.
이건 회사에서도 적용된 얘기인 것 같아요.

제가 맨처음 "조직장" 타이틀을 단지도 벌써 9년째이고, 그 동안 제 조직원으로 계셨던 분도 여러명 계셨었습니다.
전 참 "착한 리더"에요.
온라인에서는 칼같은 얘기를 많이 해서, 저를 크고 무서운 사람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사실 오프라인에서는 물러터진 인간이랍니다.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윗 상사 때문이다 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이 회사에 오기 싫은 요인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참 착한 상사 였어요.

그런데 몇몇 분이 저를 정말 심하게 막대합니다.
공경 이런걸 바라지는 않지만, 번번히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저를 맞추라고 하는건 좀 심하잖아요.
제가 옛 상사이고, 나이가 몇살 더 많고, 이런걸 떠나서 사람으로서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저는 듣기 싫은 얘기 못하는 사람이니 그냥 저만 속끓이고 맙니다. 웬만하면 안만나고 싶어요.
과연 제가 무서운 팀장이어도 그랬을까요? 저랑 만나는 것 조차 싫어했겠죠?


아랫사람에게 잘해봤자 소용없다 라는 말 싫어했었습니다.
어쩌다 아다리가 그렇게 만나서 그 님이 나와 수직적 관계가 되었을 뿐
다음에 보면 어떻게 만날 지 모를 정도로 인간은 수평한데.
내가 같은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만큼은 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랫사람에게 잘해봤자 소용없다 라는 말은 먼저 앞서 나간 사람이 뒤를 따르는 사람에게 수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사람이 그 위치에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운이 좋아서 일수도 있는데.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아랫사람에게 잘하는건 소용없는걸까요? 제가 지금껏 잘못 산걸까요?


베이비시터님은 결국 해고하기로 했습니다.
이분이 더 이상 저희집을 들락거리시는 것은 위험해보여서요.

그런데 지금 저는 이님께 4월 30일까지의 월급을 다 드려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정리해고 당하면 위로금 받아야 하니까.] 라고 또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 님이 그동안 저희집에서 훔쳐가신게 한두개가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전 바보가 맞나봐요.
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사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