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촛불집회가 한참이던 5월의 어느날, 광화문에 유모차부대가 나타났다. 이건 당시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어떤 사람들은감히 아기들을 앞세웠다라면서 흥분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그 동안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알려져있던 아줌마들이 전면에 나선 것에 큰 충격을 받았던 듯 하다. 그리고 그 일은, 대한민국 30대 여성들의 정치활동 참여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이 땅에서 기혼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불공정했다. 그들은 무식하고, 자기 가족만 아끼고 돈 몇푼에 안달복달하는 그런 이미지로 그려져왔다. 그리고 일부의 남자들은여자들은 선거때 잘생긴 후보를 뽑는다”. 라고 폄훼하기도 일쑤였다. 그 와중에, 여성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타난 것은 그간 기혼여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졌던 이미지가 한순간에 깨지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이후 가장 열심히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30대 여성들이다. 이는 지난번 6.2 지방선거 전후의 각 정당의 판세분석에서 밝혀진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30대 여성들은전업 정치활동가는 아니다. 그들은 다만 생활을 할 뿐이다.

 

30대 여성들은,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중에서 가장 생활력이 강한 사람들일것이다. 그들중 51%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엄마이고 그 중 상당수는 가정경제권을 갖고 있다. 이렇게 살다보면,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 한두가지 생각이 안들 수가 없다. 아기 보육, 직장내에서의 남녀차별부터 , 노후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아기 때문에 병원을 뛰어다니면서 의료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고, 관리비 명세서를 들여다보면서 공과금을 어떻게 줄여야 할지 연구하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좀더 나은 교육환경을 바라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바로 30대 여성들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이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국가에서 받고 싶은 공공서비스는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쇼핑몰에서 상품 고를 때에도 100번은 검색해보는 것이 요즘 여성들이니 말이다.

 

또한 최근의 여성들이 정치적인 데에 관심이 넓어진 데에는 이들이 받은 교육에서도 기인한다. 전통적인 여성상은, 권위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순종적인 자세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하지만 요즘 여성들이 어디 그러한가? “나를 따르라!”라는 외침에왜 따라야 하지?”라는 생각을 먼저 하고, 따져보고 행동하는게 요즘 여성들이다. 그렇다보니 정부나 언론이 얘기하는 것을 무조건 수용하기 보다는 행간의 의미를 찾고, A 팩트가 어떻게 B 결과를 가져 오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따져보게 된다. 어쩌면 교과서 줄줄 외워서 객관식 답을 맞추던 세대에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수능세대로 바뀐 영향도 있을테고.

 

생활속에서 느껴지는 사회에 대한 바람과 불만, 합리적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비판은 인터넷을 만나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크게는 82cook과 같은 여성동호회나 듀나의 영화낙서판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작게는 주변 동네의 엄마 모임이나 SNS를 오가면서, 내가 가진 사회에 대한 바램은 다른 사람의 바램이나 분석과 합쳐져서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제 여성들에게 정치는 나랑은 관계 없는 머리아픈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가 된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가입해 있는 30대 여성 중심의 커뮤니티 두군데에서 정치글 논란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회원들이 생활과 정치는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정치글 반대론자의 의견들이 쏙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는 30대 여성중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소비의 중심은 여성이었다. 특히 소비력이 강한 30대 여성들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산업을 좌지우지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물건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우리가 외면하면 실패했다. 골드미스라는 전체 인구에서 극히 적은 비율을 가진 집단에 대해,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눈치를 봐왔는가?

 

그런데 이건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에 있어서 꼼꼼한 눈으로 철저히 비교해온 이 여성들이 정치에 관심마저 두면서, 이젠 정치도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졌다. 50대 중년 남자 몇몇이서 술집에서 쿵딱쿵딱 하고 넘어가면 되었던 것이 냉철한 여성들의 눈에 하나둘씩 잡혀서 하나하나의 정책들이 마치 쇼핑몰 리뷰 처럼 분석되기 시작했다. 상품평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국민화장품마냥 국민후보가 생겨났고 그 결과 6 2일 지방선거는 이들이 지지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 되게 되었다.

 

2010년의 30대 여성들은 지난 30년간 전통적인 한국 산업들의 틀을 바꿔놨다. 쓰레기통 디자인 마저 예쁘게 바꿔놓은 높은 안목의 소비자들이 이제 정치마저 소비하고, 조목조목 분석하고 입소문을 내고 있으니, 이제 정치상품들도 예뻐질 차례다. 정치인들의 마인드부터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책까지, 어떻게 변할지 한번 지켜보자.

 

임수진 (웹서비스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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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갑자기 예전에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을 다시 보게 되어서..

아카이브차 블로그에 투척.


내가 이걸 블로그에 안올렸었구나.





정작 저 정치모르는 여자, 정치 아는 여자의 지면은 못찾겠네.

집에서도 저 잡지는 버려서;;;; 나는 내가 매체에 나온걸 스크랩을 안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