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82년부터 MBC청룡의 팬이었다.

9년전 소개팅에서, 관심사와 경험이 겹치지 않았던 범생이 남자와 날나리 여자가

6시간동안 한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MBC청룡과 엘지트윈스로 이어지는 야구 때문이었다.

야구 때문에 만났고 가치관 - 정치관,세계관,경제관 - 이 같아서 결혼했다.

 

생각해보면 가치관이 같은 이유도 야구 때문일수도 있다.

서울은 알다시피 연고지 팀이 두개이고 그중에서도 잘하는 OB가 아닌 못하는 MBC를 꾸준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처음 야구를 좋아했을땐 서울연고지 팀은 하나 뿐이었지만,

2년뒤 주변에 잘하는 OB팬들이 가득한 가운데 예쁘지도 않은 MBC 푸른 점퍼를 입고 학교에 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21년간 저 못하는 팀을 좋아하면서 겪게된 여러가지 태클 속에 어떤 가치관이 형성되었을 테고 그것을 겪어가면서 가치관도 비슷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 예술사조에서 패배주의와 유머코드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엘지트윈스팬이라는 것과 비슷할지도.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고 이 아들에게 팀을 물려주느냐가 나름 문젯거리가 되었다.

남편은 다른 팀을 좋아하는 아들을 상상할 수 없다 라는 입장이고, 나는 내가 겪었던 괴로움의 역사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얼마전에 화제가 되었다 지금은 삭제된 “LG트윈스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소년의 눈물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나는 그 생각을 더 공고히 했다.

아빠가 나쁜 놈이네. 왜 항상 못하는 팀만 좋아하게 만들어서쟤 인생에서 플옵 가는건 처음이잖아.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일모레 23일 팀장워크샵이 있다. 그 안에는 아웃도어 프로그램도 있다.

유광점퍼가 가벼운데 따뜻하고 심지어 나한테 잘어울려서 유광점퍼 입고 갈 생각이었는데 입고 가지 말까 라고 생각했다.

왜 안입어? 입고 가!”라는 남편의 말에 사람들이 놀릴까봐….” 라고 흐릿하게 대답했다.

어릴적 MBC잠바의 트라우마는 30년을 지속하는 일인것이다.

 

시즌 중 한참 야구 잘할 때는 우리 아들도 엘린이로 만들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1차전 지고 내가 아프고, 3차전 지고 남편이 아팠고, 4차전 8회부터 내가 아프면서 둘다 아파서 둘다 일찍 잠들고 난 다음 날.

저녁 굶고 배 곯고 자는 우리 37개월 아들을 보면서 참, 너는 아직 엘린이도 아닌데 벌써 힘들구나. 싶어서 안타까움이 가득.

 

-       나중에 알았는데 아들램은 아빠가 밤에 밥 먹였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