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세팅퍼머를 한 것이 지난 4월의 일이었다.
그 덕택에 세팅퍼머는 이제 거의 풀려가고,
가급적 신혼여행 시즌인 11월 12일~20일 기간에 예쁘고 싶어서
그때 머리가 자연스럽게 풀리길 바래서,
이달 중에 머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허나, 평일에 퍼머를 한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요즘 같이 주말에 바쁘고 바쁘고 또 바쁘고 바쁜 이 상황에
퍼머하겠다고 주말 4~5시간을 앉아있는 것 처럼 미친짓은 없다 싶었다.

그래서 심야 미용실이나 24시간 미용실을 찾아봤다.
대략. 미용실의 메카 이대권에 두군데 있는데,
그중 한군데에 예전에 디지털 파마 하러 갔다가 아줌마 되어 나온 안좋은 추억이 있어 제꼈다.
그렇다고 찜질방 미용실 가기도 뭐하고 하던 중

지난번 회식때 24시간 미용실을 발견했다.
위치 : 신사동 제일생명 사거리 제일생명 바로 뒤 이른바 선수촌.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단골 미용실이다. 오히려 이 점이 믿음직 스러웠다.
세팅퍼머 8만원. 가격도 쌌다.

그래서 어제, 간만에 7시 이후에 할일이 없었다.
차를 몰아 미용실에 갔다.

8시경. 시간을 잘못 맞췄다. 언니들 출정시간이다.
열심히 드라이하고 메이크업 받고 네일 받고.
언니들 드라이 받으면서 화장대에서 막 담배 핀다. 당황스러웠다.
안내 받은 내 자리도 역시 담배꽁초가 여섯개나 들어있는 재떨이가 있다.
9시 언니들 출근시간 까지 샴푸만 하고 기다렸다. 언니들은 출근해야 하니까.
언니들은 평범한 얼굴로 들어와서 미녀로 변신해서 나간다.
호스테스들인데 옷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냥 티셔츠에 청바지 입은 언니들도 있다.
호스테스들이 야하게 입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원피스나 정장차림인줄 알았는데 티셔츠에 청바지들이 꽤나 많다.
어시스턴트들에게 물어보니 요즘 화류계는 저렇단다.

시설은 많이 열악. 물도 차갑고. 뭐 동네 미용실 수준이다.
내가 미용실 가서 자주 읽는 GQ와 에스콰이어는 물론이고 여성지도 별로 없다.
주로 스포츠신문들이 있다. 아무래도 매일 매일 들르셔서 비교적 시간 짧은 드라이만 하고 가시니 스포츠신문이 제격이다 싶긴 하다.
그래도 밤에 할 수 있는게 어디야 싶다.

9시가 되니 이 '동네 미용실 치고는 큰' 미용실에 손님은 나 혼자다.
원래 9시가 제일 사람이 없다고 한다. 파마 할려면 9시가 젤 좋단다.
1시에 다시 사람이 많아진다고. 그땐 남자들이 온단다.
남자들? 삐끼들? 건달들?
덩치 커다란 건달들이 깍두기머리 하러 나란히 앉아있는걸 생각하고 왠지 웃음이 나왔다.


미용실 선생.
맨날 업스타일에 드라이에 고데만 하다가 파마 손님 오랫만인가보다.
그리고 화류계가 아닌 사람도 오랫만인가보다.
뭐 어색하긴 하지만 뭐 잘할꺼라 믿었다.

세팅 말고 중화를 하고 나니 0시30분이 넘었다.
이제 다시 손님들이 몰려든다. 예쁘장한 남자들..
아차 싶었다, 호스트들이다. 호스트들은 주로 호스테스 고객을 모시니까 늦게 출근하나보다.
아까 9시대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프로세스를 거친다.
드라이와 살짝 메이크업.

1시쯤 되니까 아주 바글바글이다.

1시쯤 되니까 머리가 대충 끝났다.

이미 한참 늦은 밤이라서 그런건지,
내가 피곤해보여서 그런건지,
원래 드라이값이 포함되지 않은건지
머리를 안만져주고 물기만 가셔주고 가란다.
그래서 머리가 예쁜지 안예쁜지 잘나왔는지 확인도 못하고 그냥 나왔다.


차를 몰고 집으로 오려는데 골목길에 들어섰다.
일방통행이 아닌데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길이 하나 뿐이다.
내가 먼저 들어섰는데 맞은편에 나중에 들어선 봉고차가 하도 우격다짐으로 밀어대는 바람에
한 50m를 back으로 뺀다.
봉고차 안에 아가씨들이 그득하다. 보도방 배달차인가보다. 시간이 바쁘긴 하겠지. 내가 이해해야지 뭐. 라며 뺄 수 밖에.

겨우 좁은골목길을 나와 조금 넓은 이면도로 진입.
이제는 서행으로 움직이려는데 어떤 예쁘장한 남자애가 예쁘장한 웃음을 지며 차창으로 다가온다.
얘는 뭔가 싶어서 차 핸들을 꺾어 애를 외면하고 나왔다.
핸들을 꺽어 나오는 순간 아차 싶다. 아 쟤 호스트바 삐끼인가보다. 명함 받아둘껄 ㅠ.ㅜ


아침에 일어났다.
머리가 엉망이다. 뽀글뽀글 부시시부시시.

24시간 미용실이라는 사실에 눈빛 반짝이며 궁금해 하던 팀원들
나의 머리를 보고 "아니 과장님 머리하신 분이 왜 이래요?" 그런다.

아아아. 술집 미용실을 간 내가 잘못이겠지만.....
'으하하하 머리 정말 궁금해. 과연 잘될까?' 하던 남친의 놀램도 상기되고..
이 머리로 휴가를 가야 할까 싶기도 하고.
11월 12일까지만 머리가 멀쩡히 돌아오면 내가 참아야지 참아야지..

요즘 참으로 참을성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