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TV 잡담 2007. 10. 29. 13:50
지지난주 수요일,
회사에서 갑작스레 파란이 불어일으켜져서
나는 항상 넋이 빠져있었고
누군가 얘기하다가 말고 말을 잊게 되었고
매일 술을 마셨으며
심지어 32년만에 처음으로
소주가 달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그야말로 인사불성 상태에서
남편은 매일 늦었고
나는 회사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
이라는 마음으로 살았기에
집에서 계속 적적할 뿐이었다.

그래서 달았다
하나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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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야말로 폐인 작렬.
달자마자 헬스키친 (Health Kitchen이 아닌 Hell's Kitchen) 시즌1 완파

기회만 되면 꼭 밥을 해먹는
- 그리고 밥 해먹을땐 정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밥 해먹는게 특기인 - 우리 부부
요리 프로를 7시간째 보면서 결혼 350여일만에 최초로 밥 해먹기 싫어서 시켜먹었다;;

그마저 하나TV를 침실에 설치한 고로..
남편은 침대에 베드트레이를 올려놓고 짜장면을 먹으려는;;
침대에 짜장면 흘리긴 뭐해서 침대 앞에 앉아 짜장면 섭취.

무선주전자도 아예 침대 옆으로 가지고 오고
커피와 드리퍼도 아예 침대 옆으로 가지고 오고
침대에 누워 계속 커피나 만들어 마시면서
침대 밖을 떠나질 않았다.

헬스 시즌 1 끝내고 시즌 2도 한편 보고
토요일에 놀러나가느라 못본 무한도전도 보고
남편이 2주간 야근하느라 못본 황금어장 보니
3시에 들어온 침대는 어느덧 새벽 1시.

집에 있을때도 시간 열심히 쪼개가며
공부 열심히 하던 남편과 살림 열심히 하던 아내
일순간에 망쳐졌다.

가뜩이나 저작권 민감한 부부, 동영상 다운로드 같은건 성격상 불가한 부부
- 어떻게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이 만나서 결혼을 했는지 그게 신기 - 라 못봤던 여러가지 동영상들.
우리에게도 드디어 길이 생겼다.

본인 계획 : 그간 단 한편도 보지 못했던 연애시대 & 발리에서 생긴 일 볼 예정
남편 계획 : 그간 단 한편도 보지 못했던 네멋대로 해라 & 미안하다 사랑한다 볼 예정
뒷북 부부 탄생 예감. 그러나 우리끼리는 어떻게 조정할지;; 하나TV도 두대 달걸 그랬나.

암튼 앞으로 눈에 선하고나.
이거 완전 폐인 제조기고나.


덧 : 남편 잠들고 나서 난 또 이산 완파
하루에도 열두번씩 사소한 것으로 맘이 상해버린다.
그리고 A이니까 B라는 것을 자꾸 잊고
자꾸 A라고 그랬다고 삐지고 B라고 그랬다고 속상하고.
이를테면 이런식.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으휴, 밥은 해먹고 살아?" 같은 따위의 말을 들으면 좀 맘이 거시기.
거시기해도 그러려니 하며 그냥 조용히 "아니요 밥 해먹고 살아요."라고 하면
또다시 돌아오는 "에이 그래도 반찬은 안 해먹지?" 라고 하면 정말 발끈!
그러나 그렇다고 잘 모르는 사람들 - 가장 최근에 이 얘기를 한 사람은 회사 앞 맛사지샵 아줌마들이었다 -
에게 "나 아직껏 밥 한번도 안 시켜먹었고 햇반도 사본적 한번 없고 라면도 5번 밖에 안 끓여먹었다!"
라고 시시콜콜 할 수도 없고.

저요, 어제는 직접 육수 다 내서 베트남 쌀국수 만들었고 그저께는 비프&치킨 콤보화이타랑 퀘사딜라 해먹었거든요. 왠만한 중국요리는 다 할줄 알거든요. 라고 얘기하는 것도 뭐하고 그 아줌마들한테 얘기하는것도 뭐하고
겉으로 보이는 그 이미지에 괜히 맘이 상해버렸다.


그러는 반면.
지난 토요일엔 에어콘 없는 집에 공부하는 남편에게 선풍기 내주고 부엌에서 땀 뻘뻘 흘리며 비프 화이타랑 퀘사딜라 만들다가 더위 먹어서 쓰러졌다. 그러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 싶은 것이다. 이렇게 집에서 해봤자 밖에서 사먹는거랑 얼마나 차이 난다고 내 인건비에 이 짓을 하냐! 나 인건비 비싼 사람이다! - 이거 우리 시어머니한테 배운 표현인데 내가 곧잘 써먹는 표현 - 하면서 남편에게 항변을 하다가 시름시름 앓았다.


또 그러는 반면.
또 광복절에 역시 마찬가지로 에어콘 없는 집에 공부하는 남편에게 선풍기 내주고 베트남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는 부엌에서 50분간 육수 내느라 땀 뻘뻘, 양파 얇게 써느라 땀 뻘뻘 하면서 하면서 만들었는데 정말 맛은 베트남국수랑 똑같았지만. 그래도 베트남국수가 밖에서 먹는게 비싼것도 아니고, 이게 재료값도 만만치 않고,- 베트남 향신료들이 귀해서 비싸다. 숙주도 비싸고 - 대신 양파나 고기들이 어설프다보니 남편이 '이거 재료비 얼마 차이 나지 않으면 고생하지 말고 밖에서 사먹자.'라고 얘기한 한마디에 또 삐져서 투덜투덜. 그 얘기 바로 일요일에 내가 한 얘기였는데.


또 그러는 반면
우연히 알게된 남편의 선배의 와이프의 홈페이지를 가보니, 아이는 주5일 하바에 완전히 명품 가구들로 둘러싸여진 집. 뭔가 맘 상해버렸다. 남편 선배는 혼자 벌고, 우리는 둘이 벌고. 아마 우리 합산보다 그 선배 혼자의 연봉이 더 작으리라 예상되는데, 게다가 고액연봉은 세금도 더 많이 떼니까 실수령액은 우리가 훨씬 나을텐데.. 우리 연봉 합산 상당히 많은 편임에도, 마트 가서 1600원에 1리터 플러스 180ml 짜리 우유 두개 붙어있는 우유만 고르고, 그 좋아하는 요구르트 못먹어서 집에서 만들어먹고, 비싸다고 과일 못먹고, 마트 회전초밥집에서도 1500원짜리 접시만 고르느라 눈빠지는 내 인생이 너무 궁상맞아서, 왜 난 이렇게 궁상만 떠는것이냐 하고 답답해 하며.

또 그러는 반면.
니네 그렇게 너무 알뜰하게 살지 말고 좋은 옷 사고 좋은 그릇 사라는 시부모님의 말씀과 빚만 갚지 말고 돈을 돌려서 딴데 투자하라는 친정부모님의 말씀과, "궁상떠는게 슬프면 이제 좀 가오 좀 내고 살까?"라는 남편의 말만 들으면 정색을 하면서 "무슨 소리얏! 빚 갚아야지! 아직도 2억이나 남았어!" 하는 이런 완전 변덕쟁이인것이다아아아.


뭔가 사람이 행복하질 못해.
이래도 낙관적 저래도 낙관적이 아니라
어떻게 이래도 비관적 저래도 비관적이니.


- 어쩔수 없다. 빚 2억 인생. 천성이 궁상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