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리를 할때면 항상 인터넷에서 레서피를 찾은 후 인쇄한 후에 요리를 해보고, 남편에게 훌륭하다고 인정받은 레서피는 세삼이오일에서 나온 Cook Book에 보관합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누군가를 불러서 밥을 먹여야 할땐, 그 레서피책을 찾아보고 "아 이 요리 해야지!"라고 생각하곤 하죠. 그래서 저희 집에 온 사람들은 모두 한번씩 보신 그 스크랩북입니다.

이 Cook Book은 참 잘만들어졌습니다.
저는 글씨를 못쓰고, 또 레서피 때문에 굳이 옮겨쓰는 것은 참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첫번째, Cook Book은 딱, A5 크기입니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를 가로 슬라이드로 해서 절반씩 레서피를 갖다 붙이고 (제가 어떻게 요리를 창안하겠습니까. 90%는 인터넷 요리법을 베이스로 하죠. 물론 제가 10% 정도는 가감을 합니다만.) 인쇄한뒤, 집에 올때도 딱 반 접어서 들고 오는데, (A4를 한장 덜렁덜렁 가지고 오긴 뭐하죠.) 그래서 그 접은 선 따라서 반 딱 자르면 딱 A5 크기라서 딱 맞습니다.
두번째, opp 필름으로 된 포켓식입니다. 요리책 펼쳐놓고 요리를 하다보면 물도 튀기고 간장도 튀깁니다. 당연히 종이 만으로는 위험하죠. 포켓식으로 된게 백배 현명합니다.
세번째, 가운데 쪼개서 뒤에 포켓을 앞으로 꺼내올수 있는 바인딩 시스템입니다. 고정식 바인더가 아니라 가감이 되는 바인더죠. 이게 좋은 이유는, 정리가 편해요. 샐러드는 샐러드끼리, 고기요리는 고기요리끼리, 중화요리는 중화요리끼리. 나중에 업데이트 되는 요리법도 앞으로 보내서 추후에 찾아봅기 쉽도록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덧 시행한 요리가 수백개가 넘어갔고, 그중 훌륭한 요리도 100개가 넘어갔습니다.
쿡북은 50매 밖에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문제는, 저 쿡북이 완전히 단종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번번히 킵할 생각 없이 노트북을 아일랜드 조리대에 올려놓고 노트북 보면서 요리를 합니다.
네, 노트북 보면서 요리를 하면 불편은 없어요. 하/지/만.
스크랩을 안했더니, 나중에 어떤 요리를 했는지 새까맣게 잊어먹어요. 금요일인가에는 남편이 "어머니 생신날 당신이 해삼으로 한 요리가 뭐지?" 라고 물어봤는데,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 겁니다. 또 일요일에는 "이젠 돼지립도 우리집 고유의 레파토리가 되었잖아." 라고 했는데, 역시 도저히 무엇인지 생각이 안나더군요. (지금은 생각이 났습니다. 해삼으로 만든건 해삼탕이고, 돼지립 강정은, 그야말로 우리집 레파토리가 될 정도로 제가 자주 손님을 치뤄본 음식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스크랩을 안했기 때문이죠. ㅜ.ㅡ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오늘은 하루종일 요리책으로 쓸만한 것들을 뒤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이거 뒤지는 데는 아주 집착 수준입니다.) 하지만 절망입니다. ㅜ.ㅡ

1) 디자인문구점의 레서피북, 쿠킹북, 레서피노트 등으로 나온 모든 제품은 포켓형식이 아닙니다. 직접 노트에 적는 방식인데, 아마도 이 디자이너들 내지 기획자 양반들이 요리를 전혀 안하나 봅니다. 우선 밥하는데 노트에 옮겨적는게 무슨 삽질이며, 진짜 종이에 볼펜으로 써서 보관하면, 다음 요리할 때 다 번집니다.

2) 그나마 포켓형식으로 된 것은 모두 4X6 미니포토앨범입니다. 그러나, 4*6 사이즈는 좀 작아요. 보통 프린터가 A4 온리이다보니 A4로 인쇄후 불편하게 사방을 잘라줘야 하죠. 귀찮아서 또 못할 짓이죠.

3) 그래서 그냥 A5 클리어파일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A5 클리어파일은 99% 고정식 바인딩입니다. 아주 색깔이 못생긴 것을 제외하고요. (시커먼... 아저씨 스러운 클리어파일.. ㅠ.ㅜ 아시다시피 저는 예쁜거 좀 집착.. 게다가 이 제품은 20p 입니다. 20p는 너무 얇아요.) 앞으로 가져오지를 못해요. 그렇다면, 요리를 테마별로 정리를 하려면, 클리어파일을 여러권 나눠서 따로따로 담거나, 아니면 번번히 종이들을 앞으로 넣고 뒤로 빼고 하는 그 짓을 해야 합니다;;
(참고로 A4는 너무 큽니다. A4로 할 경우, 조리대에서 파일이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큽니다. 펼쳤을 경우 노트북보다도 큰것 같네요. 지금이야 어쩔수 없다지만 기왕 인쇄를 한다면 A5가 백배 낫겠지요.)

4) 그래서 그냥 A5 바인더를 사려고 했어요. 그런데 A5 바인더의 펀치 방향과, 시판되고 있는 A5 클리어파일 속지의 펀치방향이 달라요. ㅜ.ㅡ


아.. 인터넷 레서피의 범람은.. 결국 출판 요리책들을 다 잡아먹을 정도로, 인터넷 레서피 전성시대인데, 정작 왜 레서피 스크랩노트는 이 모양인걸까요.

솔루션은,
1) 세삼이오일에 운다. ==> 라고 생각해봤지만, 저 하나를 위해서 세삼이오일이 찍어줄 것 같지도 않고.
2) 그나마 이쁜 A5 클리어파일을 산다.  ==> 결국 성남에 있는 모 문구사이트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클리어파일이었습죠. 이거라도 살려고요.
3) 궁극적으로는, 포토북으로 제 요리책을 만들까 싶긴 합니다. 그래서 쿡북을 비우고 새걸 저기다 넣을까 싶긴 합니다만, 작년 7월 유럽여행 사진도 아직 인화를 안한 주제에 무슨 요리 포토북이랍니까;;;

아 괴로워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