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리포트 잡담 2012. 4. 21. 02:53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에 온 수도권 주민이 여의도에 몰린듯한 날이었다. 당연히 우리집으로 가는 모든 길이 막혔다. 강변북로로 가기 보다는 서울 도심 중앙돌파를 시도했다. 영동대교를 넘어와서 서울숲으로 좌회전하려고 1차선에서 대기타고 있다가 막 출발했는데 갑자기 조수석에 쿵 하고 박혀왔다. 2차선에서 유턴을 하려고 무리하게 들어온것이라 내 차는 충격과 함께 유턴방향으로 덩달아 밀려들어갔고 조수석은 완전히 들어갔다.

 

대형사고라는 것을 직감후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대처가 안되었다. 다행히 카시트를 타고 있던 아들은 놀라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은 것 같다. 112로 신고해야 하나 라고 하면서 119 버튼을 눌렀으니 정신이 없긴 없었다. 가해자 쪽에서 차에서 안 내린다. 김여사인가 술을 먹었나. 어째야 하나 내가 먼저 내려야 하나 라고 생각할 무렵 저쪽에서 경찰들이 다가온다.

 

선량한 다른 차주들이 경찰에게 목격담을 일러주었다. 두명의 차주가 두명의 경찰들에게 얘기했으니 정의는 살아있나 보다. 경찰이 노면 안내선을 그려주고 차를 빼라고 하지만 너무 크게 박혀서 차도 안 빠진다. 결국 억지로 억지로 차를 돌려 나와서 비츠로 앞에 차를 댔다. 가해자쪽이 안내린건 가해자 쪽 운전석도 물려서 안 내려졌나보다.

 

시훈이는 경찰차를 봐서, 경찰을 만나서 신났다. LIG에 신고했는데 LIG가 안온다. 시훈이가 경찰차를 너무 좋아해서 늘 취객들만 상대하다 어린이에게 영웅되셔서 기분 좋아지신 경찰 아저씨들이 안아도 주시고 경찰차에 태워도 주신다. LIG는 역시 안온다. 영동대교 부근이 아기를 밖에 안고 있기엔 위험한 환경이라 경찰차에 타고 있으라고 하셨다.

 

경찰차 뒷자리에 타고 있으니 취객 하나가 내가 범죄인인줄 알고 경찰차에 와서 시비를 건다. 경찰 아저씨가 경찰차에서 떼놓으니 경찰 아저씨에게 주먹감자를 먹이더니 경찰을 때릴려고 한다. 저런 취객은 경찰차에 태워야 하겠지만, 우리가 경찰차에 타고 있으니 경찰 아저씨도 애를 먹고 계신다.
내가 내리고 저 취객을 태우고 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경찰차 안에서는 문을 열수가 없다. ㅠ_ㅜ LIG는 여전히 안온다.

 

경찰아저씨는 보험회사 언제 오냐고 재촉하신다. 보험사에 전화를 세번째 하면서 경찰차에서 내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구리디 구린 차량가액 천만원도 안되는 차이지만 어쨌든 세워둔 3000cc 차 앞에서 젊은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으니, 성수동 각종 취객들이 와서 시비를 건다. 조금만 있다가 가시려던 경찰아저씨들은 나와 아이가 위협을 받고 있으니 보호 차원에서 가시지도 못한다. 나는 아이가 폭력을 당할까봐 아이를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다. (서울숲 동네 너무 위험하다. 이 동네 대체 왜 비싼거냐. 우리 동네는 유흥가여도 질이 나쁜 사람들은 없는데!)

 

사고 발생후 30분이나 흐른 후에 드디어 LIG가 왔다. 경찰들이 드디어 나를 보험회사 직원에 인수하고 자리를 떠나신다. 그나마 LIG는 낫지, 가해차량 보험사인 한화는 40분 지나서야 왔다;; 6월 자동차 만기 되면 무조건 삼성화재나 동부화재로 갈아탄다고 결심한다.

 

차를 보더니 이 차 타고 못갈 것 같다면서 알아서 렌트카를 부른다. 비율은 최대 30%, 최소 10%. 상황이 매우 억울하지만 100% 면책으로 나오지는 않는게 교통법규이니 참아야지.

그런데 온 렌트카가 고작 1500km 뛴 그랜저HG 3.0다. 선루프도 있다. 신난다! 시훈이도 나도 신났다. 지금껏 당한 불편함과 위협. 이런거 다 잊어먹고 너무 신났다. 시훈이는 엄마가 렌트카 서류 작성하느라 차에 실어놓은 동안 알아서 카시트에 올라가서 알아서 안전벨트 매고, 알아서 신발도 벗었다.

 

그런데 또 나쁜점. 2005년 이후에 나온 차를 운전해본적 없는 나는 스마트키로 시동거는 방법도 모르겠고, 비상등은 어떻게 끄는지 모르겠고, 선루프는 어떻게 닫는지 모르겠다. 차가 너무 커서 내가 아무리 뒤로 팔을 뻗어도 시훈이 발을 만질수가 없다. 늘 시훈이 발을 만지고 다니는데 발을 못만지니 시훈이가 너무 불안해 하며 엉엉 운다. 남의 차 모든데 익숙하지 않은 나는 벌벌 떨며 운전을 시작했는데 전화위복으로 강변북로와 우리 동네 모든 길이 여전히 여의도 벚꽃 여파로 20km 서행이라 무난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차선 변경은 정말 힘들었어! ㅠ_ㅜ

 

그래도 집에 와서 후방 카메라를 보며 주차를 하니 얼마나 좋은지. 같은 3천CC임에도 내 차보다 훨씬 큰 느낌의 차인데도 늦은 시간에 와서 사각지대 밖에 없는 자리 주차함에도 한방에 댈 수 있다. 아아, 새 차 너무 좋아. 차 지름신이 솔솔 솔솔. 정신차려, 너는 대출 6억 집을 떠안을 몸이라고!

 

내 차는 큰 사고로 정비 공장 가서 사고 이력을 달게 생겼다. 하지만 뭐 내가 3번째 주인이니 더 팔릴 일이 있겠나.


그나저나, 오랜 시간동안 저와 아들을 지켜주신 서울숲 지구대 순찰 경찰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