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열두번씩 사소한 것으로 맘이 상해버린다.
그리고 A이니까 B라는 것을 자꾸 잊고
자꾸 A라고 그랬다고 삐지고 B라고 그랬다고 속상하고.
이를테면 이런식.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으휴, 밥은 해먹고 살아?" 같은 따위의 말을 들으면 좀 맘이 거시기.
거시기해도 그러려니 하며 그냥 조용히 "아니요 밥 해먹고 살아요."라고 하면
또다시 돌아오는 "에이 그래도 반찬은 안 해먹지?" 라고 하면 정말 발끈!
그러나 그렇다고 잘 모르는 사람들 - 가장 최근에 이 얘기를 한 사람은 회사 앞 맛사지샵 아줌마들이었다 -
에게 "나 아직껏 밥 한번도 안 시켜먹었고 햇반도 사본적 한번 없고 라면도 5번 밖에 안 끓여먹었다!"
라고 시시콜콜 할 수도 없고.

저요, 어제는 직접 육수 다 내서 베트남 쌀국수 만들었고 그저께는 비프&치킨 콤보화이타랑 퀘사딜라 해먹었거든요. 왠만한 중국요리는 다 할줄 알거든요. 라고 얘기하는 것도 뭐하고 그 아줌마들한테 얘기하는것도 뭐하고
겉으로 보이는 그 이미지에 괜히 맘이 상해버렸다.


그러는 반면.
지난 토요일엔 에어콘 없는 집에 공부하는 남편에게 선풍기 내주고 부엌에서 땀 뻘뻘 흘리며 비프 화이타랑 퀘사딜라 만들다가 더위 먹어서 쓰러졌다. 그러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 싶은 것이다. 이렇게 집에서 해봤자 밖에서 사먹는거랑 얼마나 차이 난다고 내 인건비에 이 짓을 하냐! 나 인건비 비싼 사람이다! - 이거 우리 시어머니한테 배운 표현인데 내가 곧잘 써먹는 표현 - 하면서 남편에게 항변을 하다가 시름시름 앓았다.


또 그러는 반면.
또 광복절에 역시 마찬가지로 에어콘 없는 집에 공부하는 남편에게 선풍기 내주고 베트남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는 부엌에서 50분간 육수 내느라 땀 뻘뻘, 양파 얇게 써느라 땀 뻘뻘 하면서 하면서 만들었는데 정말 맛은 베트남국수랑 똑같았지만. 그래도 베트남국수가 밖에서 먹는게 비싼것도 아니고, 이게 재료값도 만만치 않고,- 베트남 향신료들이 귀해서 비싸다. 숙주도 비싸고 - 대신 양파나 고기들이 어설프다보니 남편이 '이거 재료비 얼마 차이 나지 않으면 고생하지 말고 밖에서 사먹자.'라고 얘기한 한마디에 또 삐져서 투덜투덜. 그 얘기 바로 일요일에 내가 한 얘기였는데.


또 그러는 반면
우연히 알게된 남편의 선배의 와이프의 홈페이지를 가보니, 아이는 주5일 하바에 완전히 명품 가구들로 둘러싸여진 집. 뭔가 맘 상해버렸다. 남편 선배는 혼자 벌고, 우리는 둘이 벌고. 아마 우리 합산보다 그 선배 혼자의 연봉이 더 작으리라 예상되는데, 게다가 고액연봉은 세금도 더 많이 떼니까 실수령액은 우리가 훨씬 나을텐데.. 우리 연봉 합산 상당히 많은 편임에도, 마트 가서 1600원에 1리터 플러스 180ml 짜리 우유 두개 붙어있는 우유만 고르고, 그 좋아하는 요구르트 못먹어서 집에서 만들어먹고, 비싸다고 과일 못먹고, 마트 회전초밥집에서도 1500원짜리 접시만 고르느라 눈빠지는 내 인생이 너무 궁상맞아서, 왜 난 이렇게 궁상만 떠는것이냐 하고 답답해 하며.

또 그러는 반면.
니네 그렇게 너무 알뜰하게 살지 말고 좋은 옷 사고 좋은 그릇 사라는 시부모님의 말씀과 빚만 갚지 말고 돈을 돌려서 딴데 투자하라는 친정부모님의 말씀과, "궁상떠는게 슬프면 이제 좀 가오 좀 내고 살까?"라는 남편의 말만 들으면 정색을 하면서 "무슨 소리얏! 빚 갚아야지! 아직도 2억이나 남았어!" 하는 이런 완전 변덕쟁이인것이다아아아.


뭔가 사람이 행복하질 못해.
이래도 낙관적 저래도 낙관적이 아니라
어떻게 이래도 비관적 저래도 비관적이니.


- 어쩔수 없다. 빚 2억 인생. 천성이 궁상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