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잡담 2008. 12. 5. 15:20
오늘도 쉬리아에서 예쁜 패딩점퍼를 보면서 침을 뚝뚝 흘린다. 8만원.
내게 무슨 8만원짜리 옷이라니, 가당치도 않아서.
그리고 난 전부터 포멀한 수트 타입의 코트가 사고 싶었다.
지금 내게 있는 포멀한 코트는 동생이 중학교때 입고 다니다가 시집갈때 버리고 간 데코 코트.
아이잣바바 상설할인에서 80% DC해서 19만9천원에 팔던데 그것도 살까 말까 하고 있는데
8만원짜리 패딩점퍼라니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역시 로또나 되야 옷을 사지.. 하면서 창을 닫는다.

참 신기하다. 난 분명 많이 버는데 말이다.
또래의 여자들에 비하면 분명 많이 버는 사람인데도 늘 허덕인다.
가계부도 꼼꼼하게 쓰고, 늘 예산 내에서 쓰고, 100원 하나 허투루 쓰는데, 지나보면 늘 없다.
남들보다 많이 다니는 여행 때문일까? 를 따져보면 여행비는 항상 그달에 대출상환 안하면 다녀올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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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문제는 과도한 대출상환 때문이다.
집 사놓고 빚 갚겠다고 허리춤을 완전 많이 졸라놓은 뒤에 사니 늘 모자르고 힘들게 살수 밖에 없다.
이러면서 주변에 앓는 소리 해봤자 욕만 들어먹는 거지. 다른데 이미 질러놓고 돈 없다 징징 거리는 것은 동정거리도 안되는 일이다.

그럼 빚을 다 갚으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빚을 갚고 나면 비싼 동네로 이사가겠다고 또 난리칠것이고, 그리고 나면 또 빚이 억수로 늘것이고, 그 빚 다 갚고 나면 방 4개 짜리로 이사가겠다고 난리칠것이다. 그리고 나면 또 빚이 억수로 늘 것이고, 그리고 나면 차 바꾸겠다고 난리칠것이고, 그리고 나면 뭐 애 교육을 더 열심히 시키겠다고 할 것이다.

이전엔 행복했다. 돈이 모자른다고 생각하고 산 적은 없었다. 마음껏 여행 다니고, 어린 나이에 차도 뽑았었고, 즐기고 행복하고. 그때는 현재만을 보면서 즐겼다. 내게 미래는 관심밖의 일이었다. 즐거웠다. 늘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잘 살았다.

결혼을 하니 미래를 보고 살게 된다. 몇살엔 뭐 해야 하고 몇 살엔 뭐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비용을 통제해야 하고. 가고 싶은 여행지도, 보고 싶은 공연도, 사고 싶은 옷도, 먹고 싶은 먹거리도 모조리 <집><더 넓은 집><더 비싼 집>을 위해 희생 희생 희생. 완전히 마음이 떠났음에도 품안에 넣은 사표를 현실과 타협하며 아직 꺼내지도 못한. 그야말로 생활인 -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좋은 건가? 결혼 하지 않고 살았다면, 집에 대한 욕심 따윈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전과 결혼후의 내가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집에 대한 욕심을 부리고 앉아있는 걸까.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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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상수동인지라, 혼자 사는 직원들 중엔 홍대 근처에 사는 직원들이 많다. 상수동 오피스텔 + 베이지색 클래식 스쿠터 + 뒷골목 카페 호핑 + 내추럴하면서도 편안한 인테리어 + 예쁜 옷 + 티볼리와 어울리는 Blur의 To The End . 내 아이덴티티는 아직 이쪽인데, <철들어야 돼>라는 생각으로 이성으로 10원 100원에 목숨 걸며 드디어 나왔다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음반 조차 못사고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아직은 낯설고 슬프다. 그래서 역시 여전히 나에게 물어본다면, 결혼은 비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