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여러모로 모든 여건이 가장 좋다는 강남 땅덩어리 안에는
의외로 그 허영된 구석 때문에 외면 받는 실생활이 종종 목격된다.


만 8년 직장생활중 대부분을 모두 강남 한복판에서 하는 동안 겪는 가장 난처한 상황은
바로 '아플 때' 이다.
특히 여기도 다 병원 저기도 다 병원인 압구정 - 청담 근처의 이쪽에서는 더 난감하다.
그 여기도 병원 저기도 병원은 대부분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안과.
정형외과라도 찾을라치면 대부분 '척추 전문 클리닉'.
한마디로 돈 안되는 병원은 아예 없는 거다.
그래서 아플때는 옆 동료에게 문의하던가 아니면
진짜 포털사이트 로컬 검색으로 열심히 어느동 무슨과 이렇게 쳐서 열심히 찾아가야한다.


그래서 겪어본 몇번의 경험에 의한 리포트를 하자면.

이비인후과 :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 상가 내에 있음.
왠지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 신축했을때 같이 입주한 병원 같음.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 입주년도 1979년.
타임머신을 타고 70년대 이비인후과에 갔다면 어떤 상황일까를 상상하고 싶을때 이용할만 함. 학교 신체검사때도 겪어보지 못한 청력검사실을 이용할 수 있음.
60대 후반~70대 초반 병원장. 내 얘기 안들어줌 ㅠ.ㅜ 컴퓨터 시설 일체 없음.
이상한 검사 한참 하고 2만원. 왠지 쉣! 소리 나오고 싶음.

정형외과 : 영동정형외과 / 관세청 사거리 - 나산백화점 사이의 대로변에 있음.
역시 영동 개발 시절에 신축으로 개업한 건물 같음. 역시 60대 후반~70대 초반 병원장. 진료시간 30초. 내가 아무리 내 병의 상황을 얘기할려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함. 어디가 아픈건지 말 안해줌. '관절염이네요.' 하고 띡. 아니 만 20대에게 관절염이라는 무서운 병명을 얘기해줬으면 뭐라 설명을 해줘야 될것 아니야아아아. 완전 불친절한 간호사 만날 수 있음. 간호사에게 막 무시 받음 ㅠ.ㅜ 80년대 초등학교때 결핵검사 하느라 처음 만난 X레이 시설 같은걸로 촬영. 그래도 방사선 기사 아저씨는 착함.

그리고 문제의 엘클리닉 ㅡ.ㅡ;;;;;;
역삼동 디오빌내 입주. 밖에서 보면 한 층 밖으로 가정의학과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치과 여성클리닉 에스테틱 비만관리 등등이 빼곡히 적혀있음.
당연히 종합 클리닉일줄 알고 들어가면 의외로 단 하나의 방이 있는 아주 자그마한 사무실. 신발 벗고 들어가면 간호사=인포=의사 모두 같은 사람. 모든 진료과목을 다 혼자 보는 그 만능의사는 알고보면 비만관리와 피부관리 하는 사람도 같은 사람. 의사가 뭔지 모르는 얘기로 공책에다가 일일히 적음. 어떠한 검진도 하지 않음. 사실 진료실보다 피부 비만관리 하는 침대가 더 넓음. 역시 약값은 한 1만원 넘음. 아무리봐도 무당 같음.... 다녀온 사람들이 다 증언하는 '무당아줌마 병원'

그리고 오늘.

배가 너무너무 아파서 찾아간 안세병원-학동역 사이 대로변 앙드레김 쥬얼리 2층 구내과의원.
역시 영동 개발 시기에 신축된듯한 건물. 컴퓨터는 있으나 진료기록에 사용하지는 않음. 하나는 의사선생님 주식 HTS 돌아가는 컴퓨터, 하나는 인포의 처방전 인쇄용 워드파일 구동됨. 역시 60대 후반 ~ 70대 초반 병원장. 그나마 의사선생님이 지금까지 다닌 강남 이상한 병원 시리즈 중에는 제일 믿을만함. 진료도 가장 성의 있음. 얘기도 좀 들어줌. 근데 왜 아픈건지 얘기는 안해줌. 지금 장이 아픈건지 위가 아픈건지 모르겠다니까;; 내가 92년도에 쓰던 휴렛팩커드 잉크젯 프린터로 드르륵 드르륵 한참 오만년 걸려서 겨우 처방전 인쇄됨. 그래도 거기서 바로 먹여준 약 먹고 많이 나음. 왠지 시골 개업의 인상이 물씬 물씬. 누가 여길 압구정동과 논현동의 중간으로 아냐고오.

어쨌거나 그러니까.
역시 그렇듯. 강남에는 돈 벌리는 병원만 있지 돈 안벌리고 실제로 많이 필요한 병원은 없다.
그래서 1980년대 풍 병원들이 맥을 유지하는 지도. 그러나 요즘 막강한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 왕창 친절한 서비스로 무장한 다른 병원들 가다가 그런 병원에 가면 진짜 생경함이 물씬물씬. 도무지 적응 못하겠는건 사실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회사로 걸어들어왔는데,
학동역 3번출구에 종합 클리닉 건물이 신축오픈했다는 광고 포스터를 목격;;
가정의학과 소화계내과 이비인후과 등등이 다 있다.
역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어있는 곳을 꼭 잘 잡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그리고 아마 나는..
앞으로 배가 또 아프다면 나름대로 '정감있는' 구내과의원보다는
이 신축 종합클리닉을 이용하게 될것이다. 근데 왜 미안한 감정이 들까.